조선시대에도 상과 벌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회사에서 월급을 올려주거나 승진을 시켜주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큰상이 주어졌습니다. 반대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체벌이 내려졌습니다. 조선의 법과 문화 속에서 ‘상’과 ‘벌’은 단순한 보상과 처벌을 넘어, 신분과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떤 상이 있었을까요? 또, 사람들은 어떻게 상을 받았으며, 체벌은 얼마나 가혹했을까요?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의 큰상, 상을 주는 방법, 그리고 체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의 큰상, 왕이 주는 최고의 영광
조선시대에서 큰상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왕의 특별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상을 받는 사람들은 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 학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유학자, 백성을 위해 헌신한 관리 등이었습니다.
1) 가장 큰 상, ‘익대공신’
공신(功臣)이란 나라에 특별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였습니다. 특히 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는 ‘익대공신(翼戴功臣)’이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 공신에게 주어진 혜택
- 토지 지급: 왕이 직접 땅을 하사했습니다.
- 벼슬과 집안의 번영: 후손들도 벼슬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옷과 말 하사: 공신들에게 비단 옷과 말을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 큰 상으로 주어진 ‘금과 옥’
- 왕이 특별히 인정한 신하에게 황금(금괴)과 옥구슬을 내려주었습니다.
- 이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왕의 신임을 의미했습니다.
3) 어사화(御賜花), 문과 급제자의 영광
- 과거 시험에서 문과에 급제한 사람들은 왕에게 직접 축하를 받았습니다.
- 왕이 급제자들에게 ‘어사화(御賜花)’라는 꽃을 하사했습니다.
- 이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이제부터 왕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라’는 상징이었습니다.
4) 특별한 벼슬과 호칭 하사
- 왕이 신하를 특별히 인정하면, 기존의 벼슬보다 높은 벼슬을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높은 관직을 하사하여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또한 ‘대감’(大監) 같은 존칭을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2. 상을 주는 방법, 왕의 은혜를 받다
1) 사신이 상을 전하는 방식
- 왕이 직접 상을 줄 수도 있었지만, 지방의 관리들에게는 사신을 보내어 상을 전달했습니다.
- 예를 들어,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지방에 있을 경우, 왕이 직접 사신을 보내어 금과 토지를 하사했습니다.
- 이는 왕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습니다.
2) 조정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
- 궁궐에서는 ‘상신례(賞臣禮)’라는 공식 행사를 열어 신하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 상을 받을 신하는 곧은 자세로 꿇어앉아 왕의 말씀을 경청해야 했습니다.
- 왕이 직접 이름을 부르며 상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3) 문서로 남기는 상장(賞狀)
- 왕이 특별한 신하에게 상을 줄 때는 공식 문서(상장)도 함께 내려졌습니다.
- 이 문서에는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으므로 이에 상을 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상장을 받은 신하는 이를 가보처럼 보관했습니다.
3. 조선시대의 체벌, 벌은 가혹했다
1) 곤장(杖刑), 가장 흔한 형벌
- 곤장은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형벌이었습니다.
- 신분에 따라 곤장의 강도가 달랐습니다.
- 일반 백성: 심한 죄를 지으면 100대 이상 맞기도 했습니다.
- 양반: 죄를 지어도 30대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곤장을 맞으면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 심할 경우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2) 유배(流配), 멀리 보내버리다
- 유배는 죄를 지은 사람을 외딴 지역으로 보내는 형벌이었습니다.
- 주로 정치적으로 왕과 대립한 신하들이 유배를 당했습니다.
- 제주도, 함경도 같은 외진 곳이 유배지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 유배를 가면 다시 조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3) 참형(斬刑), 극형 중의 극형
- 가장 무거운 형벌은 참형(사형)이었습니다.
- 왕에 대한 반역을 저지른 자들에게 내려졌습니다.
- 목이 잘리는 형벌이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참수를 공개적으로 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4) 능지처참(凌遲處斬), 가장 잔혹한 형벌
- 능지처참은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처형하는 형벌이었습니다.
- 극악무도한 반역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결론
조선시대의 ‘상’과 ‘벌’은 단순한 보상과 처벌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공을 세운 사람은 엄청난 영광을 누렸지만, 반대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법과 상벌제도를 보면, 오늘날의 상벌 시스템과 비교해볼 만한 점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받는 상과 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