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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 중국, 일본, 거란과 여진, 서역과 동남아

by a-historical 2025. 3. 21.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고대 한반도가 생각보다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교과서에서는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식으로 시기를 나눠서 배우지만, 시대를 떠나 한반도는 항상 주변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동남아나 유라시아 지역까지도 연결되어 있었다. 국제 관계라는 것이 현대 외교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건 아니었고, 전쟁, 무역, 문화 교류, 외교 사절 방문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문화, 한국인의 정체성도 이런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과거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모습

중국 – 가장 가까우면서도 조심스러운 나라

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 상대는 역시 중국이었다. 고조선 시기부터 이미 중국과 교류가 있었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정복한 후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고, 이후 삼국 시대에도 중국과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특히 신라는 당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것도 단순한 협력 관계는 아니었다. 신라는 당나라를 이용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지만, 이후에는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하자 싸워서 몰아냈다. 중국과의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필요할 때는 협력하고, 때로는 적대적으로 변했다.

한편, 고려 시대에는 송나라와 활발한 무역을 했다. 고려청자가 이 시기에 발전한 것도 송나라의 도자기 기술과 교류한 덕분이었다. 원나라 시기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려 왕족이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면서 혈연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명나라와 조공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후기로 가면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무너뜨리자, 조선에서는 ‘명분’을 지킬 것이냐, 현실적인 선택을 할 것이냐를 두고 혼란이 많았다. 결국 청나라와 새로운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여전히 ‘소중화’ 사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재미있다. 중국은 항상 한반도에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렇다고 한반도가 중국에 완전히 종속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필요에 따라 관계를 조절하면서 자주성을 지키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본 – 교류와 갈등을 반복한 이웃 나라

일본과의 관계도 복잡했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가 일본과 특히 가까웠다. 백제에서 건너간 학자들이 일본에 한자와 불교 문화를 전파했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 문화를 보면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 보인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는 왜구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은 이 시기에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해적들이 활개를 쳤다. 고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최무선이 화약 무기를 개발한 것도 왜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였다.

조선 초기에는 일본과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외교와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조선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임진왜란이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적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선, 명나라, 일본이 얽힌 대규모 전쟁이었고,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만약 이 전쟁이 없었다면 조선 후기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거란과 여진 – 북방의 강자들

한반도의 북쪽에는 항상 강력한 민족들이 존재했다. 고려 시대에는 거란(요나라)과의 전쟁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거란은 세 차례나 고려를 침공했지만,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결국 고려가 승리했다.

이후 여진족(금나라)이 등장하면서 고려와 갈등이 많았다. 조선 시대에도 여진족과의 관계는 중요한 외교 문제였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세종 대왕이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여진족을 북쪽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결국 여진족이 성장해 후금(청나라)을 세우면서 조선과의 관계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북방 민족과의 관계를 보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북방 민족과도 항상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서역과 동남아 – 생각보다 넓었던 한반도의 국제 관계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더 넓은 지역과도 교류했다. 삼국 시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도 교류가 있었다. 신라의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잔이 페르시아에서 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개경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인들은 이들을 ‘대식국인’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도 동남아 지역과 교류가 있었다. 정화의 함대가 조선을 방문한 적도 있었고,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도 존재했다.

이런 점을 보면 고대 한반도가 생각보다 국제적인 연결망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이 글로벌한 나라로 성장한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된 게 아닐까?

역사는 반복된다

고대 한반도의 국제 관계를 보면 지금의 외교와도 비슷한 점이 많다. 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신중하게 다뤄야 하고,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갈등이 지속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파트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과의 관계도 예전 북방 민족들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과거를 공부하면 현재의 국제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내가 고대 한반도에 살았다면 어떤 나라와 가장 친해졌을까? 개인적으로는 송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고려청자를 만들던 상인들이 가장 흥미롭다. 시대가 변해도 문화와 경제가 연결되는 방식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