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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사의 역사 : 고대, 철기, 조선, 근대

by a-historical 2025. 3. 15.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름이면 할머니 댁 마당에서 커다란 수박을 보며, 손으로 직접 잡아 뜯은 고추를 씹어 먹으며 자랐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말했다.

"농사는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다림으로 하는 거야."

그 말이 참 멋있어 보였는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땅에 씨를 뿌리면 그냥 자라는 거 아닌가? 물만 주면 크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역사를 배우면서 깨달았다. 농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고 문명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기발한 방식으로, 하늘을 읽고 땅을 만지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왔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고대의 농사 – 처음 흙을 만진 사람들

아주 오래전, 인간은 들판에서 열매를 따고,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이 씨앗을 땅에 묻으면, 내년에도 열매가 열리지 않을까?"

그렇게 농사가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강가에 마을을 이루고, 돌도끼와 돌괭이로 땅을 일구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거다. 삽도 없고, 기계도 없고, 심지어 철도 없었다.

당시에는 가락바퀴라는 도구를 이용해 옷을 짜고, 토기에 곡식을 보관했다. 그리고 조, 보리, 콩 같은 작물을 기르면서 조금씩 삶을 안정시켜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오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었다. 농사는 자연을 이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비를 기원했다. 기우제를 지내고, 신에게 빌었다. "농사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믿음이 된 이유가 바로 이때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기 시대 – 흙을 다스리기 시작하다

철기가 들어오면서 농업은 완전히 달라졌다. 철제 쟁기가 나오면서 땅을 더 깊이 팔 수 있었고, 논을 정비하기 쉬워졌다.

삼국 시대에는 나라별로 농사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고구려는 산이 많아서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보리, 콩, 조 같은 작물을 많이 키웠다.

백제는 강을 끼고 있는 곳이 많아 벼농사를 발달시켰다.

신라는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며 논을 관리했다.

이 시기부터 "농사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계획이 필요하다"는 개념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물을 관리하고, 땅을 나누고, 곡식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논을 직접 갈아본 적은 없지만, 초등학교 때 논 체험 학습을 한 적이 있다. 발을 진흙에 넣었을 때, 그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끌미끌하고, 차가웠다. 손으로 흙을 쥐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그 속에서 벼가 자란다는 게 신기했다.

조상들은 그 흙을 맨손으로 만지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을 것이다.

조선 시대 – 농업의 황금기

조선시대 농민의 모습

조선 시대에는 농업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앙법(모내기)이 도입되면서, 더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벼를 생산할 수 있었다. 윤작법(작물을 번갈아 심는 방식)을 이용해 땅의 힘을 유지했다.

그리고 조선은 농사법을 책으로 정리했다. 바로 《농사직설》이다. 당시 세종대왕은 농민들이 더 효율적으로 농사짓도록 하기 위해, 각 지역의 농업 기술을 모아 이 책을 편찬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세종대왕은 한글만 만든 게 아니라, 농사법까지 정리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농업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비료도 사용되었다.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아니라, 녹비법(식물을 썩혀 거름으로 만드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걸 보면 조상들도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 농법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대 농업 – 기계가 들어오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농업을 장악하면서, 조선의 농민들은 더 힘든 삶을 살았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농업 개혁을 진행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농약과 비료가 대량 생산되었고, 기계가 농촌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트랙터가 논을 가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신기했다. 거대한 기계가 지나가면 흙이 갈라지고, 논이 평평해졌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해야 했을 일을, 기계가 몇 분 만에 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스마트팜이 등장하면서, 농업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고, AI가 토양 상태를 분석하며, 수경재배를 통해 흙이 없는 곳에서도 작물이 자란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해도, 농사라는 건 결국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 아닐까?"

농사,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

나는 농부가 아니다. 흙을 만지며 하루를 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끔 할머니 댁에서 감자를 캐다 보면, 그 흙 속에서 조상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우리 조상들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하늘을 읽었다. 비가 오면 기뻐했고, 가뭄이 들면 걱정했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우리는 여전히 땅에서 나온 것을 먹고 살아간다.

할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농사는 손으로 하는 게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흙 속에서 자라는 작물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